미국 Beauty Supply 업계의 선두주자 중 하나인 자신의 기업과 자신의 아메리칸 드림을 일구며 성공한 기업인 임병주 회장이 , 미국에서의 자신의 경영철학과 사업경영에 대해 진솔하게 강연하고 있다. (>>Click 동영상)
안녕하십니까. 저는 Ben’s Beauty Supply의 임병주입니다.
이번 KAEDC의 모든 스텝들에게 이런 기회를 우리들에게 주시느라고 수고 많이 해주셨습니다. 오늘 이 기회를 통해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고, 또 저는 개인적으로 사실은 Mentorship에 대한 아이디어가 전혀 없어서 마음속으로 많은 준비를 못해왔습니다. 하지만, 이 테마 자체가 성공스토리라 하는 테마고. 부탁을 해서, 굉장히 마음에 부담이 되는 건 왜냐면 내 자신이 성공을 했다고 생각을 하는게 아니고 이 시점까지 오는 과정속에서 실패를 너무 많이 하는 역사가 많기 때문에 차라리 성공이라기 보다도 실패라는걸 여러분에게 가르치려하고 왜 실패를 하는가 이유를 여러분에게 같이 하면서 여러분이 함께 같은 보트속에서 살아가는 인생가운데 도움이 됐으면 하는 그런 마음으로 이자리에 섰습니다.
그러면 제 자신의 개인적인 것을 잠깐 소개를 할께요
저는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일류로 들어가서 58학번입니다.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주택공사 공채1기로 주택공사에 입사했습니다. 주택공사에 입사해서 한 삼년동안, 미국오기 전, 삼년동안 근무하는 과정속에서 그때당시에 조립식 주택을 리서치했습니다.
‘국민주택을 mass production으로 해서 어떻게하면 우리 삶의 터전을 대량 공급하겠는가!’
마침 그 기회에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한성주택이라는게 일본대성건설과 join venture해서 조립식 주택공장을 설립하는 찰나에, 저는 개인적으로 미국 뉴욕에 있는 제스퍼스인케이시 시스템이라는 시니어스 시스템에서 대량공급하는 조립식 주택 하이바이스를 놓고 저희는 그 회사에 개인적으로 연결을 해서 주택공사에서 technical training을 목적으로 미국에 68년도에 왔었습니다. 거기서 1년동안 트레이닝을 끝내고 들어가기가 싫었습니다. 제가 일류대학교를 졸업하고 꿈이라면 리서치도 하고, 공부도 하고, degree를 받고 모교에 가서 teaching이나 하는 이런 것들이 내 젊었을 때 가졌던 꿈이었는데, 미국이라는 넓은 세계를 와서 보니까 여기가 더 좋은 나의 장래를, 청사진을 완성할 수 있는 곳이구나!.
그래서 일년이라는 기한을 갖다가 Biology를 하고 개인적으로 미국에 머무르기로 결정을 하고, Eastman Kodak의 Engineer Department에 건축가로서 입사를 했습니다. 그동안에 영주권을 받았고 그런 과정 속에서 저는 또 다행히 주택공사에서 여류건축사하고 같이 technical training purpose로 같이 와서 미국을 와서 결혼을 했어요. 알기는 주택공사에서 알았는데, 어찌되었든 미국생활 속에서 직장생활하면서 돈을 벌어야되기 때문에, 또 공부를 할려면 또 돈이 있어야되기 때문에 열심히 Drafting 서비스를, 낮에는 일하고 또 한사람은 제가 Rochester in NY이라는 Eastman Kodak에서 일하면서, 한사람은 각 설계사무실이나 실내장식 사무실들을 돌아다니면서 drafting service를 시작했습니다. 그렇게하고 한 5년이 지난뒤로 영주권을 받고 학위를 받고 그리고서 설계사무실을 시작했습니다.
그때 우리 가족중에 우리 아내도 여러 건축사의 한사람으로서, 또 우리 처남, 우리 동서 다섯사람의 건축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Family Operation 설계사무실을 차려서 좀 여러가지 컨넥션이 그동안 있어서 wall mall을 저희는 가장 큰 contraction company 영상과 비슷한 그런 function으로 설계사무실을 사용하고 일을 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아주 묘한 politic한 subject 하나가 우리한테와서 그 문제를 받아서 take care of 하는데 그 project하나가 U.N Center 앞에는 우간다 엠버시라는 office building에 20 Story Building을 저희들이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그때당시에 대통령이 이디아민(Idi Amin)이 이었습니다. 근데 우리 employees이 왔다갔다하고 그런 product에 대해서 local architecture office에서 control하기 위해서 project에 대한 news media에 어떤 인터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었는데, 우리 직원 한 사람이 인터뷰를 하는 과정속에서 이디아민을 상당히 긍정적으로 좋게 평가하는 news media에 두번 인터뷰를 했는데, 그게 나중에 알았지만은 어떤 그 political이 Jewish들의 어떤 신경을 건드렸어요. 근데 저희들이 거래를 하고 있는 lane이 한 20여명의 employee를 가지고 있는데, 이 architecture는 굉장히 노임이 비싸기 때문에 한 20여명의 세를 할려면 대단히 많은 돈이고 그래서 항상 account receivable을 담보로 해서 융자를 받아서 월급을 주는 데 이게 어느날 갑자기 financing이 그치는 거에요. 그런데 그 이유를 나중에 알았습니다만은 정말 그게 보이지 않은 Glass Shield를 맛본거였습니다. 어쨌든 이 건축이라는게 이민생활을 하면서 Language handicap을 가지고 일종의 Three invention art로 내 자신을 philosophy화 하는건데 정말 handicap이, financial이 여러가지로 많았습니다. 그런 과정속에서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건강이 굉장히 나빠져서 너무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서 신경성위장병이 생겼는데, 어느날 갑자기 쇠약해졌는데 아파서 견딜수가 없는거에요. 그래서 의사한테 가서 물어봤더니 Stomach Cancer라는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Cancer라고 하는데 다른거 생각할 필요 없고, right away, Operation했는데 , 다행이도 그게 양성종양이었어요. 임파선종. Stomach에 있는 임파신종양는 목이나 겨드랑이 이런곳에 생기는데 stomach에 생기는 건 2만명에 한명 나오는 희귀한 case이라고 했는데요. 참 저는 이민생활 첫번째 정말 사람이 마지막 죽음앞에서 everyday 아침에 일어나면 another day, God bless me. 그래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별로 없어요. 어찌되었든 그런 일로 인해서 의사가 ‘너의 직업이 뭐냐?’고 물어,모든 얘기를 했더니,
“That’s why, you have too much stress; you’ve better get away from here.”
“그러면 어떻게 get away 할수 있느냐 송충이가 솔잎을 못먹으면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인데!”
“그렇지만 Your life is more important than anything.”
“그럼 니가 무엇을 추천하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니 스스로 스트레스를 create하는 작업에서 피하라 그래서 누군가 너를 bother해서 니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말아라.”
“그래서 example이 뭐냐?”
“Cash를 사용해라. 너는 물건을 팔기 위해선 항상 돈을 집에 두고 거스름돈을 돌려주고 Customers Service를 하라. 그리면서 따뜻한 남쪽에 가서 살면 정신적으로 안정이 되고 그러면 니 스스로 그런생각을 안할꺼다.”
죽음을 맛 본 사람은 직업에 귀천이 없고, 그러면 ‘That’s right. I need to listen to your advice!’
그리고 한 몇개월이 지난 후에 건강이 회복되는 기미가 보이면서 바로 Houston, TX로Rochester, NY에서 정반대쪽 남쪽으로 따뜻한 곳을 찾아서 무조건 내려갔습니다. 무조건 내려가서 가만히 한국사람들이 한 300명이 사는데 뭘 하시나하고 봤더니, 저기 Ms. Kim이 계십니다만은, 거의 반이상의 사람들이 Stop and Go라고 management을 하고있고, 거기서 Cashier를 하고 있어요. 그래서 ‘Hi, this is the one. My doctor recommended a perfect fact. 내가 이것을 배워가지고 이분들이 돈을 없어 loan 빚을 할때 대비를 하기 위해서 내가 일를 먼저 배우고 내가 그것에서 사서 지어서 비지니스까지 set up해서 팔아보는 어떤 사업을 해봐야겠다!’ 라고 해서 Stop and Go에 $3.50 minimum pay를 받고 management training을 받으러 갔었습니다. 참 외국에 와서 우리 아내도 같은 건축가로서 대학 교수나 꿈을 꾸던 사람이 이제 Stop and Go에 첫날 가서 minimum wage를 받으면서, 청소를 하면서 ‘이 삶이 이런건가! 하여튼 주사위는 던져졌으니 최선을 다해야겠다!’ 싶어가지고 management을 배웠습니다. 한 보름 training을 받은 후에는, 가게 하나를 management 하라고 줘요. 그래서 했습니다. 또 한달이 지나니까 또 두개를 줘요, ‘하나도 힘든데 두개를 어떻게하는가!’ 여하튼 주는대로 했습니다. 두 달 있으니까 ‘너 supervisor training 한번 받아볼래?’ 그래도 주는대로 받았습니다. 그 training을 받으면서 보니깐 District office에 가서 뽑아야 할 Information들이 다 있어요. Location에, 매상에, 계절별로, number별로 … ‘아! 이것이 바로 내가 알고 싶은 거구나!’ 그래서 그 information을 전부 가지고 그 location마다 돌아다니면서 location을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을 거기서 배웠습니다. 그래서 딱 6개월동안 stock에서 training을 받고 나서 바로 그때당시에 7eleven이 tough area에서 management 못하는 Store 하나를 제가 살 수 있는 기회를 만났습니다. 그래서 6개월동안 Stop and Go에서 supervisor Training을 받고 그리고 6개월 후에 tough한 지역에서 management 못하는 것 구해서 손수, 그야말로 의사 말대로 retail을 전문적으로 시작하였습니다. 날마다 어떻게 강도가 들어오는거에요. 우리 한국사람들은 총을 가지고 있는것 자체가 죽음을 자초하는것이기 때문에 가지지도 못하고 맨날 보니까 짜고 치는 고스톱이에요. 거긴 경비원을 세워놔도 도둑놈들이랑 경비원이랑 짜고 치는 고스톱이에요 ‘아 이래선 안되겠구나!’ 그래서 총을 몇개를 사가지고 employee들에게 다 놔눠주고 저녁마다 총을 쏘면서 정말 한번 죽었던 목숨이기 때문에 두려움이 없었어요. 그리고 아무리 tough한 지역이지만, ‘강아지도 쓰다듬으면 꼬리를 흔드는데 인간인 너희들이 내가 최선을 다해 잘했을때 내가 어느 역경이 있더라도 내가 죽어도 convince를 시키겠다!’ 그래서 열심히 노력을 했습니다. 그래서 한 삼,사년 하니까 그게 다 없어졌어요 그런데 take over 한 2 store가 너무 좋은 store였습니다. 매상이 엄청 좋았구요. 그래서 financially, 20여명의 employee를 뒀던 건축가 사무실보다 income이 더 좋았습니다. 그리고 location을 잡아서 이런걸 계속 해오는 과정속에서 ‘과연 하나의 single store owner로서 한개, 두개, 세개, 네개… 이것만 해서 되겠는가 이젠 이것은 장사꾼이고 꾼에서 기업가로 변하는 과정을 해봐야겠다!’ 그래서 그걸 체인화 시키기 위해서 한국분들하고 대단히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만은 그게 엄청나게 힘들었습니다. 그런 체인화를 시키는데 minimum 약 200여개의 store까지 Break-even point하는데 너무나 여로사항이 많았기때문에 retail을 써서 갈수 있는 한계라는게 또 보이지 않는 Glass shield를 realize하자마자 더이상 그것을 지속할 수가 없어서, ‘그러면 다음으로 가야 할 길이 뭔가! 한군데서 멀리 빠져나가면 무얼 하든지 간에 manufacture이나 아님 import나 export나 아님 wholesale을 해야겠다!’라고 방향전환을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아시다시피 Houston은 wholesale이 대단히 발달되어있는 도시입니다. 지금도 wholesale이 미국에서 제일 잘 되어있는곳인데, 한국사람이 한 삼십년전부터 페들로로 시작했던 한류 wholesale 단지가 지금은 한 500여개의 wholesale로 되어있고 그때당시에 한국사람이 하는것만 해도 100여개가 넘었습니다. 근데 wholesale을 해야겠는데 내가 아는 게 없었습니다. 건축밖엔 아는게 없는데 뭘해야겠나 해서, 거기서 없는 종목을 선택해서 해야겠다고 조사를 해보니까 men’s cloth가 없었고, baby cloth가 없었고, 스니커가 없었고 Beauty Supply가 없었어요. ‘무얼해야겠는가! 그래도 Beauty Supply해봐야겠다.’ 그 이유중에 하나는 흑인인구는 증가할것이고 노예에서 equality of opportunity로 사회적인개념이 더 좋아졌을때에 분명히 소득이 높아질꺼고 그랬을때에 구매력이 생길꺼고 많은 technology는 분명히 좋은 제품을 생산했을때에 이것은 전망이 있다고 생각했기때문에 무조건 시작해야겠다고 하고 시작했습니다. 2500square ft의 조그만 store에서 wholesale로 시작하는 자체가 제 자신이 지나고 보면은 wholesale을 참 모독을 했구나! 그렇게 결정을 내리고 그래도 시작을 했으니까 물건은 팔리겠지했는데 3개월이 지나도록 손님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아요. ‘그러면 무엇이 잘못됐나 무슨 시행착오를 했느냐?’ 하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retail store가 하나도 없는 데서 wholesale을 했던 겁니다. 저는 wholesale에서 경쟁이 없는 종목을 선택했는데, 고객이 없는거에요. 고객이 있다는게, selling하는 chain store가 14개밖에 없었어요. 지금 현재 Houston에 있는 retail 저희 고객이 한 180개가 있습니다. 하나도 없었어요. 그러니 팔일리가 없었습니다. ‘그러면 어차피 wholesale을 접고 내가 retail을 해야겠구나!’ 어차피 retail에서는 한번 해본 경험이있지만 choice가 없었어요. 난 wholesale을 해야되는데, 또다시 retail해야한다는 자체가 이건 방향착오요, 이건 엄청난 올인이었습니다. 하지만 choice가 없었어요. 그래서 convenient store, supervisor training을 받는 동안에 location을 보는 안목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도 없는 location에서 찾으니까 엄청나게 좋은 location이 많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3군데에 retail store를 동시에 open했었습니다. 그랬는데 이게 엄청나게 힛트를 쳤어요. open한지 6개월 만에 매상이 6만불내지 8만불이 올랐습니다. Retail 여러분이 해보셨겠지만, 어느 retail이든지 monthly volume이 5만불 내지 8만불이 오른다면은 simply Net에 $20,000 per month. 한 6,7개월 되니까 한 $50,000 내지 $60,000 monthly income 이 automatical 생기니까, ‘I don’t need to do wholesale anymore.’
그런데 wholesale을 마음속으로 순간적으로 접었는데 우리 Korean, 다른 retail하시는 분들이 이게 프로모션을 실질적으로 보여주니까 이게 입으로 입으로 전해져가지고 그다음부터 하나둘 생기기 시작하는데 1년이 지난 후엔 한 50개가 생겼습니다. 그때당시 50개가 생기니까 어디 갈데가 없으니까, 항상 grand opening inventory만 파니까, 적어도 5만불어치 inventory every day order가 들어오는데 이건 양쪽 다 감당할수 없을만큼 바빴어요.
그러다보니까 그리고 나서 한 1년동안에 그렇게 지내오면서, 그런데 한국분들이 꼭 location을 답답하시게 이런분들이 있는데, 세계에도 location, 밖에도 얼마나 많은 좋은 곳이 있었습니다만은 어떻게 꼭 내 store가 있는 그 주변에만 들어오시는거에요.
그러고 나니까 이게 conflict of interest. 우리 고객하고 경쟁을 한다는 자체가 또 우리고객,
저는 경쟁 안할려고 생각합니다마는, 우리 client가 오히려 supply하고 관계속에서 conflict.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굉장히 고민을 했습니다. 그래서 과연 어떻게 앞으로 내 진로를 계속 retail로 밀고나갈것이냐 아니면 wholesale로 계속 전환을 다시 할것이냐 거기서 정말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한달에 6만불내지 5만불이라는 income이 얼마나 이게 어려워졌는지 모릅니다만은 제가 convenient store의 꾼에서 기업가로 변천하는 과정속에서 정말로 불가능한 한번 느낀 어차피 저는 demonstration을 잘해서 이젠 promotion을 했으니 이제는 제자리로 돌아가야겠구나 그렇게 제가 딱 retail을 2년을 했습니다. 그렇게 하고 본업에 전념을 했습니다. 그래서 전 지금도 Houston에 있는 고객들하고는 정말 좋은 유대관계속에서 서로 scratch하면서 유대관계를 잘 하고 있습니다. 어찌됐든 그렇게 본업에 전념하면서 여러가지 일들이 많이있었지만은 이 짧은 시간에 다 얘기할 순 없고 그게 지금 Houston을 base로 해서 Baltimore, Philadelphia 세군대로 확장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현재 세군대 한 150명의 employee 연매출액 70,000,000정도의 사무실로 키웠습니다. 근데 지금 여기서 여러분들과 같이 share하고 싶은 것은 이렇게 지내는 과정속에서 지금 기업화를 시키면서 정말 이 유통산업에 여러가지 노하우가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purchasing라든지, inventory control이라든지, marketing이라든지, financing 문제라든지, legal issue든지 여러가지 많이 있겠습니다만은 이런것은 유통산업 Ben’s Beauty Supply뿐만이 아니라 다른 industry들도 같은 어려움을 겪기때문에 여기서 그런걸 논하고 싶은게 아니고 제가 37년동안 미국생활하면서 건축가에서 convenience store owner로부터 도매상으로 기업체를 운영하는 이 순간까지 여러가지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그런 시행착오인 관계속에서 어떻게 get away할 수 있었던가를 내가 가만히 생각해보면은 그런 모든 시행착오를 하지 않았어도 될건데 한거였는데 그 가장 중요한 요인이 무언가 생각해보면은 이런것이 앞으로 얘기할 세 가지 fact로 생각한게 있습니다.
사업을 하는데는 항상 business mind가 있어야 됩니다. mind라는건 우리가 소위 한국말로 말해서 궁리라고. 궁리는 영어로 좀 좋게 미화하면 dream이라고 해요 dream.
Dream이 있어야 ‘Dream comes true!’
그런데 이 mind가 발생을 하지 않으면은, 아이디어가 생기지 않으면은 비지니스를 할수가 없어요. 우리가 여러사람들이 똑같은 강의를 듣고 똑같은 비지니스를 해도 어떤사람은 incident 마다 time to time, case by case 자기 나름대로 어떤 철학이 있어서 어떤 아이디어가 생기고 정말 store를 하나 하더라도 display도, 가격도 , 세일도 여러가지 노력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은 그냥 주는대로 갖다 팔고, 들어오는 사람한테 팔고 이런 사람과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그래서 첫째는 궁리를 해야된다는 겁니다 . 궁리.
근데 저는 그 궁리라는걸 내가 왜 생각하냐면 저는 새벽잠이 없어서 새벽 한 5시쯤 깹니다. 그래서 아침 먹을시간까지는 제 혼자의 명상의 시간, 사고의 시간인데 하도 그것이 버릇이 되니까, 우리 아내가 처음 결혼해서 저사람이 옛날 애인생각을 해서 저렇게 하는가 오해도 했습니다만, 그 시간이 저는 궁리를 하는 시간이었지 않은가. 그때 궁리를 하면서 여러가지얘기를 생각하는데 그 생각하는 중에는 좋은말로 얘기해서 우리가 사고를 한다고 그러죠. 사고의 객관성이 들어가야하고 긍정적인 사고를 해야하는 것. 저는 그것을 대단히 강조하고 싶습니다. 사람이 생활하는데 있어서 항상 부정적인 사고의 싹을 틔우면 안돼요. 항상 긍정적인 사고… 그래서 긍정적인 사고 자기나름대로 어떤 시나리오가 항상 완성된 모습을 그려보면서 매일 자기일을 하면은 굉장히 aggressive해지고, moderate해지고, 실증이 안나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런 사고 속에서 어떤 자기가 궁리했던 어떤 시나리오에 자기 지식을 가지고 총동원해서 어떤 평가한 결과로 하겠다고 하면은 주사위는 던져야됩니다.
던져진 주사위는 1이 나오든지 6이 나오든지 뭐든지 나오지만은 던져지지 않은 주사위는 확실하게 안나옵니다. 그런데 그 주사위를 던지는게 쉽지는 않습니다. 왜냐면은 인간은 근본적으로 약한 존재이고 인간의 능력으로서 해결할 수 없는 많은 fact에 의해서 얼마든지 실패할 수 있는 확률이 많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자면
Disaster
Disaster 하면 Man made disaster such as 911, Korean war.
Natual disaster는 우리 이번에 경험했던 카트리나.
이런것들로 인해서 시도를 못하는데 일단 긍정적인 사고를 하면은 주사위를 던져지게 됩니다. 주사위를 한번 던지면은 그야말로 최선을 다해야됩니다. 최선을 다한다는건 영어로 ‘Do your Best.’죠. 우리 한국말로는 ‘양반지게지듯이 하지말라.’ 이런 표현이 있어요. 이건 굉장히 느슨한 표현이죠.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가 미국에 오래 살면은 through your thinking이라. 받아들이는 자세가 긍정적이고 강한 메세지로 받는게 훨씬 우리한테 좋은거 같아요. 일본말로 하면 ‘밋쑈앤미시마쇼’이러죠. 이걸 우리말로 표현하면 목숨을 걸고 하라는 얘기입니다. 던져진 주사위가 조준되면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해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살아남기가 힘들어요.
그리고 나머지 두번째는 실패의 두려움이 없어야 됩니다. 또 경쟁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야 됩니다. 전 실패나 경쟁에 대한 두려움이라는건 어떤 얘기로 내가 항상 정의를 하냐면은 정글에는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사자도 있고, 호랑이도 있습니다만은, 동시에 거기는 토끼도 있고, 다람쥐도 있습니다. 그럼 토끼나 다람쥐가 항상 다 큰 동물들에게 먹히는 게 아니라 자기 나름대로 자생할 수 있는 힘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 얘기는 바꿔서 말하면 자기 자신을 그런 방향에서 그 다람쥐나 토끼의 위치에서 놓고 보면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실패나 두려움에 대한 염려가 없어집니다. 그리고 인간은 자기가 최선을 다해서 했는데도 실패했을때는, 저는 개인적으로 그래요, 아무런 후회가 없지요. 가깝게는 내 가족, 내 처자식을 봐도 부끄러움이 없고, 내 개인적으로도 내가 거지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부끄러움이 없습니다만은 어떤때는 성공을 해도 대단히 후회하는 경험을 많이 해봤습니다.
‘내가 이렇게 했었으면 더 성공할 수 있었을텐데…’
‘내가 저렇게 했으면 더 성공할 수 있었을걸…’
‘내가 기회를 놓쳤구나!’
이런 후회하는 일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궁극적으론 실패를 하더라도 내자신이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사는게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세번째는 비지니스라는게 어느 기계요령하는 technology나 새로 나온 방법이나 아니면 인터넷매치 모든 technical한 knowhow. 이런것들이 상사업성공에 도움일 수는 있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생각하면은 모든 자기 비지니스의 성공의 요인은 자기 인격완성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건을 파는게 아니라 내 자신의 인격을 파는거라 생각합니다. 저는 그래도 우리 salesman이나 telemarketor한테 하는게, 여러분들께 물건을 파는데 Ben’s의 물건이 값비싸고, 서비스가 나쁘고 또 여러가지 factor에 의해서 여러분이 operator로 나에게 컴플레인을 하는데 그거는 그거 자체에 문제가 있는게 아니라 여러분의 인격에 문제가 되는겁니다. 열심히 서비스를 하고 물건이 갔으면 잘받았느냐. 아니면 어떠셨습니까. 어떤 컴플레인이 있으십니까. 미리미리 얘기를 해서 서비스를 잘하면 여러분들의 인격적으로 그 사람들이 respect를 받을수 있는 어떤 서비스를 여러분이 받으면은 조그마한 실수라든지 조그만 가격의 비쌈이라든지 이런건 별 문제가 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잘 안하기 때문에 감정적으로 이게 나오게 됩니다. marketing이나 sales나 여러가지로 문제점이 있는데 정말로 자기 인격을 파는 것이기 때문에 마지막 권고하고 싶은것은 될 수 있는대로 책을 많이 읽으시라고 권고하고 싶습니다. 이상입니다.
두서없는 말로 준비없이 여러분 앞에서 실패라는 걸 통해서 여러분이 함께 앞으로 가시는 길에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그리고 이 KAEDC 스텝멤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렸는데, 참 이런 기회가 굉장히 저 개인적으로는 좋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저는 Beauty Supply 비지니스맨으로서 우리 한국사람이 이 미국 beauty industry에 OTC account (over-the-counter) 우리 개인이 하는 store를 OTC라고 하는데 이게 전체 industry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한 60%쯤 됩니다. 그런데 한 60% OTC에서 85%가 우리 Korean American이 소유하고있습니다. 아마 특정한 sector, 이 Beauty duty sector에 대해서 한국사람이 involve된다는게 아주 좋은 것이 많이 있습니다만은 주류사회에 percentagewise, 가장 많은 percentage에 진출 되어있는 업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 현재 우리 Korean American들이 현재 지금 상황은 어떠냐. 지금 우리 이 모임 자체가 재외동포로서 우리 native country Korean들과 어떤 유대관계를 가지면서 앞으로 같은 page 속에서 같은 문제점을 해결해 나갈수 있는가 하는 어떤 그런 조직체로 이해하기 때문에 저는 이런말씀을 드리는데, 외국생활 몇십년동안 하면서, 이젠 개인 비지니스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하나의 재외동포로서 한민족공동체로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기관, 일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노하우 이것들이 미국회사뿐만 아니라 Global화 시킬 수 있는 굉장히 좋은 potential을 우리는, 이 beauty supply는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중에 하나는 다행히도 저는 한국 Korean beauty supply industry의 주된 하나의 덕이라고 생각하면은 제가 미국에 처음왔을때만해도 $100 가지고 나온 한국사람이 전체를 합해도 10만이 안되는 그런때였습니다.
지금은 우리 한국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상상할 수 없는 발전이 이뤄졌습니다.
그러면 이것을 전세계에 뻗혀있는 우리 재외동포들이 세계화할 수 있게 잘 organize를 해서 세계를 정복할 수 있는 좋은 potential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 같은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코디네이트해서 조직화하는데는 항상 같은 업종으로 conflict of interest 문제 때문에 그건 거의 불가능 하지만은 이런 매체를 통해서 또 본국 정부의 어떤 financing, skill을 같이 넣어지게 됐을때 정말 세계를 장악할 수 있는 좋은 chance입니다.
특히 우리 beauty supply는 3가지 elementary가 있습니다.
우리 retailer가 가지고 있는게 chemical, generalment, hair입니다.
이 세가지가 100%입니다. 그런데 이 세가지가 전부 우리 한국인의 땀이 배어 있습니다. 그런데다 우리 한국 IT산업이 얼마나 발전되어 있습니까. 이것이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이세계 elementary가 인터넷 매체를 통해서 세계화 할 수 있는, 정말로 어려운 것 같지만 쉽습니다. 왜그러냐하면은 그 elementary를 가지고 있는 portfolio나 information을 우리는 공짜로 다 가질수 있기 때문에 종합적인 여느 포탈 싸이트…
Communicomputer.com, whatever.
여러분 우린 제조 회사로 부터 포탈 싸이트를 advertise 할 수 있는 여건을 얼마든지 가지고 있습니다. 그와 함께 우리가 인터넷 어떤 소프트웨어라든지 이런걸 한국과 함께 교류할 수도 있고 한국에 있는 어떤 제조업이라든지 beauty 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세계화 하고자 했을때 이런걸 잘 코디하면 정말 좋은 계기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것을 어떻게 utilize해서 하나의 global기업으로 형성할 수 있는가 하는 시나리오를 가지고 한 5년 전에 Unitel이라는 삼성의 컴퓨터가 있었죠. 그때 강박사님과 연결이 되서 그걸 proposal한 적이 있습니다. ‘인터넷매체를 통해서 어떻게 세계를 정복할 수 있는가!’ 그랬더니 그분이 굉장히 좋은 시나리오라고 해서 아답터로 해서 펀드로해서 코스닥에서 나스닥까지 상장하는 어떤 프로그램을 진행하다 구조조정에 실패를 하는 통에 제 자신이 control할 수 없기에 말았습니다만은, 여러분은 내 자신의 개인적인 사업성공이 아니라 우리 조국이 이제 상당한 지탱수가 있기 때문에 조금 재외동포들에게 배려를 정치적으로 또는 경제적으로 노하우를 또 코디네이터 역활을 하는 어떤 funtion이 있었을때 얼마나 우리 한국이 세계로 더 뻗어 나갈수 있을까 하는 그런 것도 있고, 어제 말씀해주셨습니다만, 세탁소는 우리 한국사람들이 다 장악을 했지만은 유태인들이 supply하는 것은 아직 다 내주지 않았다. 참 그게 맞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예를 들어서 우리 가발업계, 저는 가발하고는 상관 없지만, 업계를 생각해보면 중국에서 노하우를 다 가르쳐주는 통에 또 우리 업체들의 자체경쟁 때문에 노하우를 다 가르쳐줬기에 지금 역공격을 받아서 오히려 더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런것들이 우리가 잘 조직화 되서 그런 누를 범하지 않고 그런 전투를 하지 않아도 세계를 정복할 수 있는 Casting vote를 쥘 수 있는 organization이 오늘 처음 시작하는 이 conference가 효시가 돼서 세계를 한군데 묶는 역활을 해줄 수 있는 funtion이 계속해서 이어졌으면 대단히 감사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